인문사회대학 교수님들께 떠나면서 드리는 인사말씀
우리의 삶을 흔히들 관계맺음이라고 정의하곤 합니다. 저도 이런 정의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나와 타인과의 만남, 거기서 빚어지는 상황과의 만남이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삶이란 인간관계와 거기서 빚어지는 상황을 씨줄로 하고 시간을 날줄로 하여 베를 짜는 일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의 삶의 대부분을 교육이라는 베틀에 앉아 피륙을 짰습니다.
제가 짜놓은 피륙들은 귀한 사람들의 값진 옷감으로 알맞은 화려한 비단은 아니었습니다. 더러는 올이 튀기도하고 투박한데다가 색깔도 곱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잔재들을 담아 둘 포대자루로나 쓰기에 알맞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동안 한눈을 팔지 않았기에 튼튼한 베를 짤 수 있었던 것에 위안을 삼습니다. 제가 짜놓은 이 보잘 것 없는 피륙에는 아름답고 선명하지는 않지만 제가 교직에 있는 동안 맺어졌던 모든 관계들이 작은 무늬로 들어와 박혀 있습니다. 그 무늬들은 앞으로의 제 삶에 때로는 위안되어주고 때로는 따끔한 훈계가 되어줄 것입니다.
저는 이제 지난 삼십 칠년 여 동안 앉아 있던 베틀에서 지금까지 짜놓은 피륙을 가위로 잘라가지고 내려와야 합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날줄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게 휴식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제 새로운 베틀에 옮겨 앉아야 합니다. 먼저 앉았던 베틀에 걸려 있던 날줄의 길이는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만 제가 새로 옮겨 앉은 베틀에 걸린 날줄의 길이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베를 짜낼 수 있을지, 얼마나 오래 베를 짤 수 있을지는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베틀에 앉아 베 짜는 일에 몰두 할 것입니다. 다만 주어진 날줄을 모두 쓰고 제가 짜던 피륙을 가위로 잘라가지고 베틀에서 내려오는 순간에도 직조공으로서의 저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푸를 때에도 하트형의 그 동글동글한 잎이 아름답지만 떨어져 뒹구는 낙엽이 되어서도 달콤한 솜사탕 같은 향기를 은은히 풍겨내는 계수나무를 닮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저와 십 팔 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분들도 계시고 최근에야 뵙게 된 분들도 계십니다. 저와 함께하신 시간들 속에서 혹시 저로 인해 마음에 작은 상처라도 입으신 일이 있으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그리고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학장님께, 또 이 자리를 준비하시는 데 힘쓰셨을 행정실 교직원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선생님들의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내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 8. 29
박 정 규